top of page

소서

고백

"널 좋아해. 나도 내가 너한테 이런 말을 진심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널 좋아해. 내기에서 진 것도 아니고 내기를 건 것도 아니야. 내가 널 진짜 좋아, 악!!"

 

넋이 나간 듯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줄줄이 말을 외우던 김독자는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다. 이미 몇 번이나 김독자의 손에 의해 구겨진 듯한 종이를 다시 한 번 꾸역꾸역 구기며 김독자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마 옆집이 유중혁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았을 듯이 난리를 치다가 이내 힘이 빠진 듯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있는 힘껏 구긴 탓에 쫙쫙 펴도 종이에 구김이 가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게 꼭 제 마음인 것만 같아 김독자는 웃고야 말았다. 전하지도 못할 말을 이렇게 줄줄이 외우면 뭐 해?

 

"누가 보면 스피치 대회라고 나가는 줄 알겠다.. 젠장할!"

 

바닥에 종이를 힘껏 내던졌다. 이미 바닥에는 김독자가 방금 던진 것과도 같은 종이가 수십 장을 깔려 있었다.

 

"아니 왜? 지금까지 걔랑 맞대고 산 세월이 얼만데? 정신 차려, 감독자! 넌 걔랑 발가벗고 목욕도 했어!"

 

물론 코흘리개 어린이 시절 때지만.. 이어지는 작은 탄식이 작은방을 가득 채웠다.

김독자는 지금 사랑에 빠졌다.

 

자신의 17년 지기 소꿉친구에게.

 

수업이 다 끝나고 친구들마저 전부 집에 돌아간 시간에 홀로 외로이 쓸쓸하게 교실에 남아 있는 중이다. 텅 빈 교실이 유난히 추워 닭살이 돋은 팔뚝을 거칠게 쓸었다. 지금쯤이면 아마 우리 중혁이네 집에 도착해서 유중혁 그 자식은 게임이나 하고 난 그놈 옆에서 밀린 웹소설이나 보고 있어야 될 텐데 인기가 많은 누구 때문에 이게 뭐 하는 고생이람. 하여튼 잘생긴 놈을 소꿉친구로 둔 덕에 나날이 고생만 늘었다. 몸도, 마음도. 뭐, 후자야 순전 내 탓이니 유중혁을 탓할 이유도 없지만..

 

중학교 때나 지금이나 유중혁은 한결같이 잘생겼고 그로 인해서 언제나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그중 하나고. 그래도 중학교 땐 뒤에서나 몰래 좋아했지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유중혁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타이틀을 놓칠까 봐 고백도 못 하고 있는 제 신세가 갑자기 초라해 보였다. 할 짓이 없어 이미 읽었던 부분이라도 다시 읽자 싶어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던 손을 멈추고 창문 밖을 쳐다보자 만화의 한 장면 이기라도 한 듯 바람과 함께 벚꽃이 휘날리고 그 사이에 유중혁과 선배가 서있었다. 입학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신입생 중에서도 모르는 애가 없다던 그 인기 많은 선배와 마찬가지로 입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선배들에게까지 잘생겼다고 소문난 유중혁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한 쌍의 연인 같았다. 응당 저놈과 내가 친구라면 마땅히 중혁이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을 기뻐해 주고 축하해 줘야 할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그냥 친구냐. 저놈 짝사랑만 몇 년째 하고 있는 미련한 친구지. 요즘 들어 꼬박꼬박 방과 후에 남아서 고백을 받고 있는 제 친구지만 오늘따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사람은 딱히 없는지 고백하는 것도 죄다 거절하는 유중혁이었는데 오늘은 아닌가 보다. 역시 유중혁도 인간이라고 인기가 많다고 소문난 선배가 고백을 해오니까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쩌지. 이거 오늘은 진짜 바람맞는 거 아냐? 차라리 바람을 맞는 게 낫지 방금 성사된 커플 사이에서 하교를 하는 제 자신을 생각하니, 심지어 커플 중 하나는 몇 년째 짝사랑 중인 친구 놈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웃었다. 웃고 웃고 또 웃었다 배를 잡고 깔깔거리기 직전까지 웃었다. 저 자리에 내가 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그대로 책상에 엎어졌다. 뭐, 유중혁이 저 선배랑 사귀어서 오늘 나 혼자 집에 간다고 해도 가방은 여기 있으니까 가방 챙길 때 나도 깨워주겠지. 어젯밤 잠도 별로 못 자서 피곤한데 괜히 복잡한 생각을 하긴 싫었다. 눈을 감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교실을 가득 매우던 초침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적막함만 가득한 암전이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잠을 자다 묵직하지만 거슬리지는 않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쉽게도 이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을 잘 알고 있다. 애초에 모를 수가 없다.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까마득한 옛날부터 고등학생이라는 딱지도 벌써 1년이나 지난 18살까지 친구로 지내면서, 또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유중혁, 너를 좋아하는 나는 너에 대한 것이라면 너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네가 들으면 또 웃기는 소리 말라며 핀잔이나 줄 것 같은 다소 오만한 말이지만 난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널 좋아하나 봐, 중혁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아직까지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내가 널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네가 들어왔다. 평소라면 거리낌 없이 헤치고 들어와 자는 날 깨웠을 네가 오늘따라 가만히 서 있었다. 일어나야 되나? 잠시 고민을 했지만 네가 하는 있는 얼굴이 어떤 얼굴일지 몰라 무서워 계속해서 엎드려 있었다. 웃는 네 얼굴이라면 내가 그대로 울 것만 같았고 평소와 똑같은 얼굴이라면 나도 모르게 대뜸 내 마음을 고백할 것만 같았으니까. 다시 교실이 적막함에 휩싸였다. 정신이 말짱한 채로 엎드려 있으려니 허리가 저려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몰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을 텐데 아, 저 자식은 왔으면 좀 깨울 것이지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기만 할 거야? 그냥 눈을 뜨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을까? 하는 마음마저도 들자 그래. 뜨는 거다. 김독자! 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 온갖 구호를 다 외친 후에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는 찰나였다.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은은하게 들어오던 햇빛이 자취를 감췄다. 아. 뜨겁게 내리쬐지도 않고 적당히 따뜻하니 딱 좋았는데 중혁이가 뭘 모르네. 불평을 가볍게 속으로 털어놓고 있을 때 네 손이 내 머리카락을 스쳤다. 빗으로 빗는 것 마냥 네 손가락이 내 머리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아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사람이 자고 있으면 깨우질 못할망정 가지고 놀고 있네. 이제 진짜 슬슬 눈을 떠야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을 때였다. 머리카락이 젖혀진 틈으로 드러난 제 볼에 말랑한 감촉이 닿은 것은.

 

어라?

 

그 순간 눈이 딱 떠졌고 내가 본 광경은 자그마치 태어날 때부터 친구이자 내가 짝사랑하고 있는 유중혁이 눈을 감고 자는 제 볼에 뽀뽀를 한 것이었다.

 

응?

설마.

말도 안돼.

이거 꿈이냐?

꿈이지?

유중혁이 나한테 왜 뽀뽀를 해?

설마 그 유중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해?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벙쪄 있었다. 아니.. 유중혁이 날 좋아할 리가 없잖아. 꿈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 유중혁과 내가 서로 좋아해서 연인이 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렇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고민하며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너와 눈이 마주쳤다. 채 3센티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에서 서로의 시선이 엇갈린 것은 처음이었다.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빛을 발하는 너의 눈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뻣뻣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방을 들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제대로 닫히지 않아 가방 속에서 물건 두어 개가 쏟아졌지만 그걸 신경 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난 오늘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던 나에게 뽀뽀를 한 유중혁을 교실에 버려두고 도망쳤다.

 

아, 시발. 내일 학교는 어떻게 가냐?!

 

심장이 뻐근해질 때까지 뛰어서 집에 오는 순간에도, 저녁에 나온 생선에 가시를 발라내는 그 순간에도, 자기 전에 익숙하게 핸드폰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즐겨보는 웹소설 사이트에 접속을 했을 때에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아까 전의 상황만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유중혁이 고백을 받으러 방과 후에 불려 나갔는데 나는 같이 하교를 하기 위해 교실에서 유중혁을 기다리고 있었고, 시간이 오래 걸리자 피곤해진 내가 잠깐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이고 있을 때, 그때 유중혁이 교실로 돌아왔다. 좋아. 여기까진 문제가 없다. 내가 자는 것만 아니면 종종 있었던 일이잖아? 문제는.. 자고 있는 내 앞에 서서 한참 동안을 내 머리카락만 만지다가 내 볼에 뽀뽀를 했다는 거지? 지금? 그 유중혁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이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한다. 나는 몰라도 그 유중혁이 날 좋아할 리가 없잖아.. 지금껏 고백했던 애들만 해도 나보다 더 나은데! 아까 일을 생각하다 보니 화가 나는 건지 좋아서 이러는 건지 몰라도 얼굴이 홧홧해졌다. 손을 들어 아까 유중혁의 입술이 닿은 볼을 문댔다.

 

아. 유중혁도 날 좋아해서 이랬던 거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몇 번이고 먼저 입 맞출 텐데..

 

잠이 영영 안 올 것만 같은 밤을 보냈다. 실제로 얼마 자지도 못하고 일찍 일어났다. 오늘 같은 날은 차라리 잘 된 일이지. 후딱 머리를 감고 로션을 바르고 교복을 입고 가방을 쌌다. 익숙하게 너의 번호를 쳐서 문자를 보냈다.

 

-오늘 먼저 간다.

 

원래 만나서 같이 가던 시간보다 20분은 빠른 시간이니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난 아직.. 유중혁을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걸! 도망친다고 욕해도 할 말이 없다. 적어도 난 지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정말로 유중혁이 나를 좋아해서 그런 짓을 했는지 아니면 눈치 빠른 그놈이 내 마음도 나 눈치채고 놀리기 위해서 그런 짓을 했는지. 다행히 반은 다르니까 쉬는 시간하고 점심시간만 버티면 하루 종일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 오늘 점심은 매점 빵 확정이구만.

 

나는 그렇게 하루 온종일 유중혁을 피해 다녔다. 쉬는 시간 종이 치는 것과 동시에 교실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을 쏘다닌다든지, 화장실이 짱박혀 있다든지 하여튼 평소에 안 하던 짓을 내가 유중혁 때문에 한다. 1교시나 2교시가 시작하고 교실로 갔을 땐 반 친구들이 유중혁이 너 찾던데? 같은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소리를 전해줬지만 점심시간마저도 꽁꽁 숨어 있으니 종래엔 포기한 것 같았다. 날 찾는다는 소리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으니까. 아니 포기하면 좋은 일인데 내심 아쉬운 건 뭐냐? 정신 차려라, 김독자! 하여튼 유중혁은 내게 너무 해롭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신경을 쓰게 하니까. 뭐, 이제 종래도 끝났으니 먼저 간다는 문자 하나만 날리고 집에 달려가면 된다. 멍한 상태로 가방을 메고 신발을 챙겼다. 실내화를 신발로 갈아 신고 실내화를 가방에 넣고 핸드폰을 들었을 때 익숙한 향이 바람을 타고 왔다. 단단한 손이 내 손목을 잡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 콕 박혔다.

 

"하루 종일 도망은 잘 쳤나? 이쯤 했으면 이제 시간 좀 내주지 그러나, 김독자."

 

아, 시발 좆됐다.

 

손목마저 잡힌 와중에 내가 저놈의 무식한 힘을 뿌리치고 도망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분명 어제 내게 그런 짓을 한 건 자기인 주제에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워서 난리를 쳤는데 멀쩡한 유중혁을 보니까 괜스레 짜증만 났다. 저거 진짜 나 안 좋아하는 거 맞는 것 같은데? 하필 또 가는 곳은 어제 창문 밖으로 내려다봤던 곳이다. 자꾸만 밑으로 가라앉는 기분과는 다르게 벚꽃은 화사했다. 어찌 보면 어제보다 더. 하, 여기는 무슨 비밀 얘기를 하는 곳이라고 정해진 거냐? 내가 너 덕분에 이런 것도 알게 되고 고맙다, 고마워. 네가 멈춰 서자 따라 걷고 있던 나도 멈췄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너에게 오히려 더 고마웠다. 내가 네 얼굴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런 말을 내가 널 쳐다보면서 어떻게 말하겠냐? 기왕 뒤돌아서있는 거 내 얘기가 끝날 때까지 쭉 돌아서있어라. 쭉!

 

"야."

"..."

"대답 좀 하지, 유중혁?"

"왜 부르나, 김독자.“

"왜? 왜애? 지금 네가 나한테 한 짓이 뭔지는 알고 그러냐? 야. 너야말로 나한테 왜 그러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잘못은 네가 했다, 임마! 허구한 날 고백받는 거 기다리게 만들질 않나. 어제는.. 잠자는 놈 볼에 뽀뽀를 하지 않나. 야. 이왕 이렇게 된 거 까놓고 말하자. 너 나 좋아하냐? 그래서 어제 그랬냐?"

 

그동안 저 녀석을 짝사랑하느라 마음 졸이고 고생한 걸 생각하니 수도꼭지를 최대로 튼 것 마냥 말이 콸콸콸 쏟아져 나왔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그냥 깔끔하게 물어보고! 깔끔하게 차이고! 해결하자. 그래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될 테니

 

"좋아한다."

 

뭐?

 

"... 뭐라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네가, ...나를?"

"그래."

 

지금 내가 뭔 소리를 듣고 있는 거지? 진짜로 유중혁, 네가 날 좋아한다고? 귀에 날카롭게 꽂히는 말에 고개를 번쩍 들고 너를 쳐다봤다. 당연히 잘생긴 네 뒤통수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잘생긴 뒤통수보다 더 잘생긴 네 얼굴이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중혁아.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야. 다시 말해봐.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그래. 몇 번이고 말할 수 있다. 내가 김독자, 너를 좋아한다.“

"그럼 뭐야.. 어제 너 내 볼에 뽀뽀한 것도 내가 좋아서 그런 거야?"

"그 일은.. 사과부터 하지. 미안하다. 너를 좋아하게 된 후로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았는데 네가 날 그렇고 그.. 런 마음으로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혼자 마음을 삭히자고 결심을 했는데도 요즘 들어서 별 관심도 없는 것들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었다. 참는다고 해봤지만 어제 결국 선을 넘은 것 같군. 네 마음이 풀릴 때까지 쳐도 된다. 얼마든지 쳐라. 다시 한 번 .. 미안하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러니까.. 넌 내 10년 지기 소꿉친구 유중혁이고 내가 몇 년을 짝사랑한 유중혁인데 그런 네가 날 좋아한다고? 그렇고 그런 마음으로?“

".. 뭐?"

 

이번엔 너도 멍해졌나 보다. 평소보다 한 템포 느리게 대답하는 네가 답지 않게 귀여웠다. 뭐야. 그럼 우리 서로 좋아하는 거야? 놀리는 거 아니잖아, 지금. 유중혁은 내 눈을 피하지도 않았고 맑은 눈동자를 숨기지도 않은 채 똑바로 내 눈을 마주하며 말하고 있었다. 그럼 나 너한테 키스해도 돼, 중혁아? 당연히 되겠지? 그야 우리 서로 좋아하는 사이잖아. 마음속으로 주절거리던 것을 멈추고 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젖살이 쪽 빠져 날카로운 네 얼굴을 두 손으로 한 움큼 잡아다가 그대로 내게 끌어왔다.

 

아, 더럽게 아프네.

 

콧대가 맞부딪히고 입술이 갑자기 세게 닿느라 이빨도 아팠다. 새가 쪼듯이 너의 입술을 쪽쪽 소리를 내며 부딪쳐도 보았고 이내 물컹한 촉감이 제 입술에 닿았다. 그것이 신호가 된 듯 뒤로 우린 정신없이 서로를 탐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감각에 형편없이 숨이 모자랐다. 퉁퉁 부은 너의 입술을 이빨로 잘근 물자 더운 숨과 함께 떨어졌다. 하얀 얼굴과 대조되게 붉은 입술이 예뻤다. 그대로 냅다 들이 박듯 너를 꼭 끌어안았다. 단단한 몸이랑 부딪혀 가슴팍이 살짝 아려왔지만 괜찮았다. 지금 내 품 안에는 네가 있는걸. 숨을 정리하지 못해 밭은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유중혁. 중혁아. 좋아한다. 나도, 내가 너한테, 이런 말을, 진심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널, 좋아해. 내기에서 진 것도 아니고 내기를 건 것도 아니야. 내가 널 진짜 좋아, 해."

 

연습할 땐 그렇게 안 되던 말을 드디어 끝맺었다. 그것도 네 앞에서. 중간중간에 숨이 차서 형편없게 들렸을 게 뻔하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을 온전히 너에게 전했다는 것이 기쁘다. 아무리 네가 정신이 없었어도 내 말을 다 들었을 텐데 가만히 있는 너에 조금씩 불안해지는 찰나 다시 네가 내게 왔다.

 

부드러운 너의 입술이 좋다. 너의 향이 코앞에서 맡아지는 게 좋다. 단단한 너의 몸을 내가 꽉 끌어안을 수 있어서 좋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워하면서 입술을 먼저 부딪히는 건 잘하는 네가 너무 좋다.

 

아무래도 중혁아. 우리 진짜 서로 좋아했었나 봐. 좋아하나 봐. 사랑하나 봐.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단 속설이 있다. 너를 안느라 꽉 쥐었던 주먹을 피자 조그마한 벚꽃잎이 있었다.

 

“사랑해, 유중혁.”

“사랑한다, 김독자.”

입술 키스
'당신을 사랑합니다.'

©2019 by 독자중혁 키스합작. Proudly created with Wix.com

  • twitter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