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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중혁최고

너와 나의

너와 나의

 

1.

 

중혁아,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몇 번의 잠자리, 몇 번의 대화 그 속에서도 김독자는 그 한마디를 뱉지 못해 심장이 곪아가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고 또 동경했기에 이어지고 싶었고, 의외로 그와 이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의 생각을 내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겠지만.

 

중혁은 한 번만 자신과 자달란 김독자의 부탁을 단번에 허락해주었다. 마치 처음이 아닌 것처럼 의연하게 구는 모습에 조금은 초조했지만, 그 날밤의 중혁의 몸은 경험이 있는 사람의 몸이 아니었기에 조금은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유중혁은 왜 김 독자에게 품을 내어준 것일까. 그 이후로도 이어진 몇 번의 잠자리에선 그 어떤 따스한 말도, 전희도 후희도 없었다. 중혁은 관계가 끝남과 동시에 자리를 피했고 독자는 그런 중혁을 붙잡지 못해 등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으니.

 

이 관계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새하얀 중혁의 등을 바라보던 독자가 몸을 약간 숙여 그 허리에 입을 맞췄다. 지극히 충동적인 행동으로 중혁의 어깨를 쥐고 허리를 맛보듯이 혀를 내밀어 핥아냈다. 내 것이라고 이름을 적고 싶다. 내 것이라고 흔적을 남기고 싶다. 너를 내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물밀 듯 밀려오는 충동에 김독자가 입을 떼어내고는 이를 악물었다. 더 하면 중혁이가 싫어하겠지. 김독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급하게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거절은 언제나 두렵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관계는 남기는 것 없이 어느 날 끝나버리겠지. 그것이 오늘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에 김독자는 그대로 중혁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래, 차라리 네게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이 감정을 정리한다면 나는, 네 곁에 조금 더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중혁의 떨리는 몸과 붉게 달궈진 귓바퀴를 보지 못한 독자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그 자리에 혼자 남은 중혁이 김독자가 사라진 문을 그저 빤히 바라보았다. 아직도 입술이 닿은 살결이 뜨겁게만 느껴진다. 네가 이곳을 강하게 물어서 자국을 남겨주었으면, 그래서 나를 온전히 가져 주었으면. 중혁이 손을 뻗어 옷을 집어 들었다. 사랑도 감정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관계가 얼마나 더 지속 될 수 있을까. 그저 중혁은 이 관계의 끝이 오늘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2.

 

“혹시 두 분 싸우셨어요?”

“네?”

“묘하게 서먹해 보여서….”

 

유상아의 말에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독자가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뱉어낸 후 표정에 미소를 띄었다.

 

“저희가 뭐 하루 이틀 싸우는 것도 아니고, 걱정 마세요.”

 

물론 전부 거짓말이었다. 자신이 먼저 유중혁을 등지고 나온 이후로부터 중혁과 단둘이 남을 기회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내가 유중혁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중혁이의 배려 덕이었구나. 독자가 처참한 기분에 고개를 숙였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만 날 수 없는 관계라니. 이거 너무 불공평하잖아. 독자가 마른 입술을 매만지며 눈으로 유중혁을 쫓는다. 여전히 변함없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중혁이 오늘따라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 나를 안 좋아할 수도 있지. 나랑 하는 섹스가 질릴 수도 있지. 그래도 왜 하고 싶지 않게 되었는지 정도는 설명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다른 것도 아니고 몇 번이고 같이 잔 사이…. 아니다. 아니야. 겨우 섹스파트너 정도의 사이에서 무얼 바래. 중혁이가 아니라면 아닌거겠지. 독자가 표정을 굳히고 자리에 앉아 양 손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 손으로 다시 네 따뜻하던 살결을 훑고 싶다. 그냥 그저 파트너라도 좋으니까. 네 일부를 가지고 싶다.

 

“김독자.”

“….”

“김독자.”

“어? 어어…. 미안 못 들었어.”

 

상념에 빠져있는 탓에 중혁이 자신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독자가 화들짝 놀라며 중혁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대화하는 게 얼마 만이지.

 

“그렇게 별로였나.”

“…어?”

“그날의 그것, 별로였나.”

“그게 무슨 소리야?”

 

다짜고짜 심각한 표정으로 앞뒤 어미를 다 자르고 묻는 중혁의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던 독자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 뜻을 해석하기 위해 미간에 힘을 주었다. 대체, 무슨. 아.

 

“아? 아냐,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럼, 왜 그날 먼저 나갔지?”

“그야, 그게….”

 

독자가 눈에 띄게 당황한 눈치를 보이며 중혁의 눈치를 살핀다. 여기서 유치하게 매일 네가 먼저 나가니까 이번엔 내가 나가봤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게 혼자 좋아하는 거 같아서 비참해서 그랬다고 할 수도 없고…. 어색한 표정으로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하려 머리를 굴리던 독자가 겨우 닫혔던 입을 열었다. “졸, 졸려서." 김독자 이 멍청한 새끼, 말이 되냐. 졸려서? 독자가 속으로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 뜯으며 들려올 중혁의 뒷말을 기다렸다. 뭐라고 그럴까. 그런 개소리 말라고 그럴까. 아니면 그렇게 졸리면 앞으로 혼자 잠이나 잘 자라고 할까. 중혁의 말을 마치 심판을 앞둔 죄수의 기분으로 기다리던 독자가 뜻밖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면 되었다. 그, 오늘 밤에 찾아가겠다.”

그렇게 이번에는 완전히 넋이 나간 듯한 독자를 두고 중혁이 먼저 등을 보였다. 독자가 묘한 기분에 눈을 꿈벅였다. 저거, 도대체 무슨 의미이지.

 

3.

 

중혁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그날 내가 너무 굳게 행동했었나. 아니면, 무언가 성미에 안 맞았었나. 그저 입술이 허리에 닿았을 뿐인데. 중혁이 그때의 감각을 회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단순히 몸만 섞는 그런 관계 말고, 그런 다정한 키스를 좀 더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날 김독자의 행동을 생각하면, 뭐 말도 안 되는 이야기겠지. 자신을 피하는 독자를 같이 피해 다니던 중혁이 독자에게 말을 건 것은 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자신도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중혁이 이왕 이렇게 된 거 묻고자 했던 것을 물었고 그 답은 보다 더 허무했다. 졸렸다고? 그게 정말, 말이 되는 핑계라고 생각하는 건가 김독자. 중혁이 화를 낼 듯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참아내고는 등을 휙 돌렸다. 오늘 밤에는 무엇이 되든 간에 결판을 내야겠다고, 이러다간 정말 남은 것 없이 이 관계가 끊어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불안에 떨던 중혁이 눈을 감았다.

 

“김독자.”중혁이 나지막이 독자의 이름을 불렀다. 네게 닿아도 괜찮을까.

 

“이제 그만하자, 이 관계도 쓸모없는 행위들도.”“중혁아…”

 

김독자가 당황한 듯 중혁의 손을 잡아당긴다. 그대로 독자의 품에 안겨 오면서도 중혁은 말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은 내가 부서지는 것만 같다.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거 같아.”

 

중혁이 이윽고 독자의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이처럼 엉엉 그 품에 안겨 울었다. 제발, 이제 나를 사랑해 달라고 억울한 목소리로 독자의 품에서 웅얼거렸다.

 

“좋아해 중혁아.”

 

독자의 목소리가 중혁의 귓가에 내려앉는다. 울지마, 그렇게 달래주면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다정한 입맞춤을 그 얼굴에 마주한다. 너를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존재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죽였다. 중혁아. 나 좀 봐봐. 독자가 재촉하듯 중혁의 귓가에 쪽, 입을 맞춘다. 그만 부끄러워해. 나 좀 봐봐.

울음으로 얼룩진 목소리가 점차 사그라들면 중혁이 그 품에 얼굴을 더 묻는다. 너무 충동적으로 굴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 오랜 감정들이 더는 묵혀 둘 곳이 없어 사정없이 흘러넘친다. 겨우 맞닿은 것을 자각할 틈도 없이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너를 좋아한다고 나도 말해야 하는데. 다물린 입술이 열릴 생각을 않는다.

 

“김독, 자.”

“응,”

“이제 그만.”

 

이제 그만 내 입을 막아줘. 겨우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4.

 

간만에 느긋하게 잠을 자던 독자가 묘한 느낌에 몸을 뒤척인다. 뭔가, 자꾸 몸을 만지는 것 같은데.

 

“중혁아…?”

“가만히 있어라.”

 

그렇게 말한 중혁이 연신 이불속에서 꿈틀거리며 독자의 등을 따라 입을 맞춘다. 어깨, 등, 그리고 허리. 말간 입술이 살결에 닿는다. 움찔거리며 그것을 느끼던 독자가 웃음을 지으며 중혁이 하는 행동을 멋대로 내버려 둔다.

 

“그러다 자국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런 독자의 말에도 반응 없이 여전히 독자의 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급급하던 중혁이 이윽고 허리에 진한 입술 자국을 새기고 나서야 독자에게서 떨어졌다.

 

“이제 넌 내 꺼다.”

 

그렇게 말하고는 휙 등을 돌리는 중혁을 바라보던 독자가 그 머리통을 끌어안고 이불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래 네가 다 해. 잘생긴 것도 예쁜 것도 귀여운 것도 다 네 가해. 나 자신 마저도 네가 가져. 네가 원한다면 이 세상의 종장까지도 내가 모조리 가져다줄게. 네 것이 되고 싶다고 너를 가지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원하던 염원들이 이렇게 이루어짐에 여전히 현실감은 없다. 그래도 네가 이렇게 내 품안에서 숨 쉬고 있으니 그것으로 된 게 아닐까. 독자는 중혁의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항상 맡던 투박한 향이 아닌 부드런 살내음이 퍼져나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너는 얼마나 존재할까. 허리에 남은 자국이 괜히 간질거린다.

 

너는 내 것이라고, 네가 말 했던 것처럼 세상을 구할 때까지 너는 내 곁에만 있어야 한다고. 여러 의미를 내포한 자국이 선명히 맹세처럼 제 안에 남아있다. 영원히 네게 속박되어 너를 안고 싸울 것이라고 그렇게 약속한 독자가 괜히 중혁의 목덜미를 훑어낸다. 아직 제대로 된 답을 못 들었는데. 뭐, 그건 언젠가 해주겠지. 그 말이 겨우 단어가 되어 네가 뱉을 수 있게 된다면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독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전히 머릿속에서는 너를 향한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너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두고 나만이 보고 싶다. 내가 네게 소유되었다. 아니, 이제 네가 내게 영원히 속박되었다. 너는 이제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내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겠지. 독자가 어스름하게 웃었다. 이제 겨우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했을 뿐이다. 앞으로 단둘이서 보게 될 수많은 하늘이 있겠지. 그런 독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말똥한 눈으로 올려다보던 중혁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눈앞 남자의 미간을 꾹 눌렀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는 듯, 그리고는 그 얼굴을 잡아당겨 입술을 쪽, 마주했다.

 

“그거 알고 있나 김독자.”

“응?”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

“음, 모르겠는데. 혹시 우리 1일?”

“…멍청한 놈.”

“하하, 모르겠는데. 안 알려줄 거야?”

 

응? 중혁아 안 알려줄 거야? 재촉하듯 묻는 독자를 흘끗 쳐다보던 중혁이 다시 독자의 입에 입을 맞추고는 그대로 고개를 품에 파묻는다. 더 묻지 말라는 무언의 뜻에 독자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중혁을 그대로 품에 끌어안았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중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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