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토라
너의 의미
내가 살아있다고 믿는 모든 순간이 고통이다.
※ 이 글은 학교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충격으로 토기가 치밀 만큼 복부에 통증이 있었다. 갈빗대를 뚜드려 맞아 숨이 턱 막힌다. 새된 비명이 입 밖으로 채 다 나오지 못하고 거의 꺽꺽대는 소리만 났다. 정신없이 옷자락을 움켜쥐는 동안 뇌의 신경을 끄트머리부터 우악스럽게 뜯어 먹는 저주스런 말들이 고막을 두드린다. 그래도 참았다. 손톱으로 손바닥을 짓눌러 참았다. 너덜너덜한 입술을 다시 한 번 터트릴 때까지 앞니로 씹었다. 좀약이 입으로 들어와 내장까지 토해낼 기세로 입을 벌리면서도 참았고, 하나뿐인 교복이 찢겨 나갔을 땐 수선비나 걱정했다. 흰자위를 들어내며 미친 척 악을 쓰고 상대를 물어뜯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 봐야 제 기운만 쏙 빠지고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없었다. 당장은 최대한 몸을 웅크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언제쯤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파란색 천 지갑이 좌우로 쩍 갈라진다. 그 안에 들어있는 돈이야 그의 삼 일치 정도 되는 식삿값에 지나지 않는다. 빼앗기면 조금 굶으면 되었다. 빌리고 구걸하면 된다. 김독자의 인생은 대부분이 그렇다. 짓밟혀 짜부라지고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해답도 찾지 않은 채 방황하며 존재한다. 그가 그렇게나 증오하는 사람을 위해서 산다.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겠다며 세상과 단절시킨 증오스런 존재에겐 어쩌면 삶의 이유가 있으리라 믿으니까. 그것은 사실 핑계다. 단지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숨 쉬고 존재하는 것에 가까스로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살아있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으니까.
그는 근처의 인적이 사라지고 나서야 손바닥을 뻗었다. 사각형 타일을 하나하나 짚어 기었다.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은 잊어버렸지만, 그를 보고 신경 쓸 사람은 아마 없다.
김독자는 재킷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재킷 이음선 언저리에 쭈그리고 앉아 만든 작은 주머니가 있다. 그곳은 언제나 지폐 한 장이 떨어질 날이 없도록 한다. 세 번을 접어 넣은 지폐는 조금 전의 과격한 움직임으로 볼품없이 구겨져 있었다. 사람의 손을 타 낡고 바랜 낙엽색 지폐를 바닥에 펼쳐 손바닥 아래에 둥그런 부분으로 꾹꾹 밀었다. 지폐를 최대한 다듬고 나서야 몸뚱이를 단정한다. 앞머리가 전보다 조금 길었다. 뒷머리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위로 뻗친 그대로다. 눈 뜨고 봐줄 수 없이 지저분한 몰골. 거울을 피하면서 남들에게 본인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를 싫어했지만, 김독자의 동년배쯤 된 아들을 하나 키우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어쩔 땐 일부러 찾아오지 않고 현관문 손잡이에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 걸어둔다. 오늘 아침에는 밥알이 조금 마른 김밥이 있었다. 단무지와 부추, 얇게 저민 불고기 정도였지만, 금방 소화도 되기 전에 죄다 토해낸 것이 조금은 아깝다. 그는 대신 한숨을 삼켰다. 이 지긋지긋한 화장실에서의 할 일은 아직 남아 있다. 나뭇가지처럼 뻣뻣한 다리를 겨우 움직여 방치된 대걸레로 청소하고 입안을 강박적으로 닦아댔다. 수십 번 헹구고 수십 번 손으로 문질러도 영 편치 않다. 적어도 코피가 멎을 때까진 교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발을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송곳 같은 시선이 쏘아졌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단순히 칫솔을 찾으려는 의향으로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다. 가방은 없다. 속까지 발가벗겨진 가방은 우유의 비릿한 냄새를 덮은 채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고, 안에 있던 내용물은 창문 밖으로 내던져졌다. 칫솔, 치약, 필통, 노트하나. 이래서야 정말 학교에 다니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김독자는 잠깐이지만, 고민에 잠겼다. 학교 건물 옆에 조그맣게 낸 컨테이너 매점에서 칫솔을 살 수 있었으나, 당장은 돈이 없었다. 메마른 토지마냥 쩍쩍 금이 간 휴대전화 액정을 확인하며 교실을 빠져나온다. 아직 오전. 급식실 문이 열리려면 한 시간은 족히 남은 지금이면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그 날도 김독자는 타인에 의해 낯선 장소로 끌려갔을 때였다. 옥상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날은 뒷머리가 조금 탔던 날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범법을 저지르는 그들에게 새로운 장난감이 있었고, 그것을 김독자에게 사용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죽일 생각 따윈 없다는 것은 안다. 누군가를 유린하는 삶이라도 선을 넘어 스스로를 불리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조금 태우는 건 그들에겐 질 나쁜 장난 정도이고, 우유를 부어 불은 금방 꺼트렸다. 그래도 그땐 어쩐지 참을 수가 없었다. 꽉 걸어 잠근 문이 열리듯 눈알이 터져나갈 것처럼 울었다. 그를 향한 알 수 없는 끔찍한 말들이 머릿속에 휘몰아친다.
“믿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떠니?”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움에 대해 용서해주셔.”
“믿음이란 마음이며, 마음은 결국 정신이니, 너의 시련에 도움이 될 거란다.”
언젠가 교내의 위클래스 상담교사가 말했다. 그런 것에 의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 역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안쪽에서부터 망가져 있었고, 기계조차 부품 하나가 고장 나면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렇다면 제가 가진 불행이 모두 스스로가 원인이란 말인가? 김독자는 의문을 가졌다. 김독자가 원하는 건 삶의 이유를 찾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행복해지지 않아도 좋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불행마저 떠안고 사는 것과 같다. 식물의 줄기가 꺾여도 잎을 피우는 것처럼. 자신보다 더 지독한 꼴을 당하는 사람도, 동물도. 그래도 그들은 살아간다. 그래서 살고 싶었다. 살아가는 것에 이유를 찾지 않아도, 의미를 떠넘기지 않아도 그냥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저기.”
머리가 울릴 정도로 울음을 쏟아내다가 덜컥 숨이 멎었다. 김독자는 입을 틀어막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그늘에 숨는다. 잔뜩 긴장한 목소리는 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김독자는 옥상 계단이 통로 건물 아래 있었고, 목소리가 향한 곳은 주변이 콘크리트로 막힌 물탱크 주변에서였다.
“키스…받을 수 있다고 해서…….”
긴장한 목소리의 주인이 빳빳한 지폐 한 장을 들이밀었다. 그 뒤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남녀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첫 키스는 너처럼 멋진 사람이랑 하고 싶었어.”
“용무 끝났으면 가라.”
“고마워.”
하나의 인기척이 사라지고 물탱크 주변을 서성대던 사내가 가까워졌다. 김독자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몸을 웅크렸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거두지 못했다. 단순히 멋지다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수천, 수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열광을 받는 해외의 연예인에게 견주어 본다고 해도 죄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달이 뜨지 않는 어느 날의 밤을 담은 눈과 마주쳤을 때, 심장이 매섭게 뛰어올랐다.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달콤한 과자 바구니를 눈앞에 둔 것처럼 이성이 날아갈 만큼의 욕망이 충동적으로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던 모든 감정이 잿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타들어 간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무서웠다. 통제되지 않는 마음이 그를 집어삼킨다. 전신에 소름이 돋을 만큼 달큼함에 덧씌운 사랑스러움이 흘러넘쳐 숨이 막힌다. 유중혁이랬다. 학교 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김독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돈 주면 키스해준다는 놈, 아직도 장사 하냐?”
“요즘엔 사내새끼도 받는다던데.”
“돈 더 주면 뒤도 대줄 듯.”
“솔직히 웬만한 놈들보단 생겼으니까, 나는 가능.”
사내든 교사든 키스를 파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는 사실이 아닌 것 같았다. 유중혁은 하루에 세 번만, 키스 외에 그 어떠한 터치도 용납하지 않았다. 돈을 더 준다고 악을 써도 싸늘한 시선을 거두며 돌아섰다. 왜? 그건 김독자도 알고 싶었다. 그 규칙에 어떤 이유가 따르는지 몇 번이고 생각해본다. 돈은 필요하지만,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것이라고 짐작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명이나 거쳐 갈 정도의 인기에 미루어볼 때, 세 번이면 꼭 돈을 벌겠다는 의미가 불투명해진다. 어떠한 답에 도달하든 사실 김독자와 별 상관이 없었다. 생각을 거듭하는 것은 단지 그에게 자신을 갖다 댈 수 있는지 가늠해 보기 위함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너에게 조금, 그 짧은 몇 분의 시간만이라도 사랑받고 싶다.
“얘, 너 몇 반이야?”
수업 중에 복도에서 교사를 마주치는 것만큼 번거로운 일도 없었다. 김독자는 칫솔을 포기하고 거의 기듯이 걷다가 허리를 폈다.
“괴롭힘 받니?”
“아뇨.”
교사는 귀신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새하얗게 질린다.
“일단 보건실부터 다녀오고 교무실로 와.”
“네.”
김독자는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학교 전체가 그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는 부인 했고, 목격자는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인 김독자마저 묵인했다. 그 상태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를 상담실에 주기적으로 불러내거나, 치료를 권유하거나, 은연중에는 전학을 언급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김독자는 가시처럼 날아와 박힌 누군가의 질타를 떠올리곤 한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며?”
인내하지 못한 죄.
“그 왜 유명한 책 하나 있잖아. 그것 때문에 소문이 자자하던데.”
학교에서 유중혁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김독자를 모르는 사람도 없었다. 금방 지나친 교사는 아마 모른 척해준 거겠지.
김독자는 옥상 문 앞에서 몇 번이나 심호흡했다. 일부러 거울로 살피지 않은 것에 대해 조금 자책했다. 너무 더럽지는 않을까. 찢기고 터진 몸뚱어리는 조금 징그럽지 않을까. 그는 천 리길 같은 옥상을 천천히 가로질렀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유중혁은 김독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유중혁.”
겨우 그의 이름을 입 밖으로 끄집어냈을 때, 김독자는 몸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낀다. 허벅지 부분의 바지를 당겨보기도 하고, 앞머리를 만져보기도 한다. 유중혁의 시선에서부터 도망치기 위해 고개를 떨어트리며, 주머니에서 꺼낸 지폐를 내민다. 손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나도 키스할 수 있을까?”
손에 힘이 풀려 쥐고 있던 지폐를 떨어트리지 않는 것에 집중한다. 유중혁은 가깝게 다가섰고, 지폐를 낚아챘다.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자마자 김독자는 유중혁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 전에 유중혁의 손을 잡아당겼다. 커다란 손. 마디 하나 튀어나온 곳 없이 곧게 뻗은 손가락. 단지 그의 살갗이 조금 닿은 정도로 김독자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울음 대신 짧게 웃었다. 얼굴 근육 곳곳이 단단해진다. 그때부턴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어졌다. 김독자는 아주 천천히 그의 손바닥에 입술을 떨어트린다.
너에게 조금, 그 짧은 몇 분의 시간만이라도 사랑받고 싶다.
손바닥 키스
구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