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는 K씨
신이 내린 세상
-당신은 세상이 멸망한다면 누굴 믿고 싶나요?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세상은 이미 몇 회차의 시간을 반복하며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멸망하는 중이었고 이 상황에서 누굴 믿는다는 것만큼 의미 없는 짓은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녀석은 상기된 목소리로 물어왔다. 작은 키로 로브를 뒤집어쓰고 하늘을 쳐다보는, 멸망이 시작된 이래 5번째로 초대 별 관찰자의 눈을 이어받았다는 별 관찰자, 이길영. 유중혁은 잠시 말을 골랐다. 녀석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알리지 않는 것이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여러 가설이 떠올랐지만, 그는 생각을 갈무리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결국 할 말은 한 가지였으니.
"믿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요. 생각과는 다른 대답에 신전 입구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유중혁이 뒤를 돌아봤다. 이길영은 길어서 땅에 닿는 로브를 질질 끌리도록 내버려 둔 채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굳이 힘들여 믿는다 한들 보상을 받을 수는 있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을 믿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단 하나의 빛나는 이를 제외한다면.
여느 때와 똑같은 패턴이었다. 공단의 이들은 이길영을 위대하게 생각했지만, 유중혁은 그의 이기적임을 알기에 탐탁지 않았다. 별 관찰자인 그는 신의 존재를 알지만 신을 믿지는 않았는데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신, 구원의 마왕을 믿을 뿐이었다. 그 신을 위해서라면 공단의 인간이나 회귀자나 그게 그거일 테니. 멸망에서 세상을 구한다는 거창한 말로 몰린 자신이 죽고 나면 공단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길영의 손에 넘어가서 안 그래도 힘든 오늘, 내일 하는 삶을 신들에게 미움 받아 당장 죽을 수도 있겠지.
-9158번째 신께서 날개를 접어 지상으로 내려오십니다.
때가 되었다. 이길영은 눈을 감으며 의복을 단정하게 고치고 은하의 길이 있는 방향으로 수차례 절을 올렸다. 그러자 그와 같이 별 관찰자로, 별의 관찰을 돕는 신유승이 태초의 인간으로부터 별 관찰자들에게 대대로 물려오는 유물, 흑백 깃털을 가져왔다. 평소에는 가라앉아있던 그것은 투명상자 안에 두둥실 뜨여 은하의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깃털을 꺼내어 조심스레 유중혁에게 건네었다.
"회귀자여, 빛이 그대를 부르니 지금 당장 은하의 길로 출발하세요. 이 깃털이 빛의 증명을 도와줄 겁니다. 부디 당신의 앞에 신의 가호가 가득하기를.“
실크 비단같이 부드러운 깃털이 유중혁의 손으로 떨어지자 파아앗, 빛나는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것을 잠시 지켜보던 이길영이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도 알겠지만, 신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라는 건 없습니다. 오직 희생해야만 하는 앞길이 있을 뿐.“
신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끝까지 자신을 경계하는 표정에 유중혁은 대답 대신 발걸음을 옮겼다.
*
은하의 길. 별 관찰자들이 신들과 재앙에 대한 것을 살필 때 확인하는 별자리의 길을 뜻했지만, 사막에 황혼이 찾아올 때마다 원리도 모른 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크나큰 폭포수 또한 의미했다. 말도 안 되는 크기는 공단에서도 보였기에 그것을 본 이들은 그 광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마치 황혼의 시간에 삼켜져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있는 듯하다' 말하고들 했는데, 별 관찰자들의 말에 의하면 초대 별 관찰자를 특별하게 여긴 신이 그에게 선물해주었다, 라고 전해진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다. 어쩌면 이길영 같은 별 관찰자가 자기 멋대로 왜곡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오의 뜨거운 열기와는 달리 서늘하게 내려앉은 밤공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유중혁은 예민한 감각을 소유한 자였고 그렇기에 평소와는 달리 오히려 무게감이 없어져 긴장감 없는 건조한 모래바람이 공기 중에 섞여 흘러 다니는 것이 썩 불쾌했다. 그는 인도라 만들어진 그러나 그저 모래 밭길일 뿐인 길을 걸었다. 터벅, 터벅, 짧지만 강단 있는 걸음걸이에 퍼석거리는 모래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일정한 소리에 그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회귀자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부터 단 한 번도 피로가 없던 날이 없긴 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그것이 보다 심해져 자꾸만 한숨이 나오려고 했다. 이 또한 신이라는 이가 내려온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신이라는 자가 자신에게 회귀, 라는 단어를 하사해서일까.
「본디 태어나기를, 태초의 인간들은 모두 회귀를 할 수 있어서 회귀자가 특이한 존재는 아니었다. 유중혁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두 번째의 삶을 살면서부터였다. 죽어버린 이들이 사라지는 모래가 된 후에야 나타난 이상한 사내와의 헤어짐. 이후로 그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눈을 떴다. 그곳은 불행하였으나 평화로웠다. 회귀. 자신이 아는 이들 모두가 그곳에 존재하였기에 유중혁은 남자를 만났던 때가 꿈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곳이야말로 모두가 있는 환상과 다름없었다. 눈을 뜨고 가장 처음 보인 것은 이설화였다. 그는 가장 마지막으로 죽은 태초의 인간을 잡으며 물었다. 이설화, 나를 알아보겠나.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당연히 유중혁 씨죠.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너무나도 당연히 나오는 말에 유중혁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의료시설을 제치고 밖으로 향했다.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분명 자신과 생과 사를 같이한 동료일 터인데 그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정해라, 유중혁. 자신조차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희망을 가지고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하며 오랫동안 그들을 지켜봤지만 돌아온 것은 지독한 절망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번째 회귀를 했고 어째서인지 첫 번째 회귀와 마찬가지로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는데 만나는 이들은 역시 전과 다름없이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그 뒤로 유중혁은 회귀자를 자신 한 명으로 한정하였다. 어차피 잊어버릴 거라면 기억을 가져야 하는 이, 회귀자는 자신 한 명인 게 나았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던 그는 어느덧 커다란 철문에 마주했다. 사막 한가운데 난데없이 흘러내리는 폭포수에는 이상하게 재앙 또한 다가오지 않았고 그에 인간은 이를 조금이라도 이용하고자 하였다. 태초의 인간들은 은하의 길을 발견한 즉시 공단을 세움과 동시에 저장소를 만들어갔다. 대부분의 물이 메마른지 백 년도 더 되어 보이는 사막으로 흡수되고 그중 일부의 것만이 저장소로 들어갔지만, 그것만으로도 공단 대부분의 생활은 무리 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아득히 예전의 기억이 그를 향해 손짓했다. 어서 와, 중혁아. 주위를 살핀 그가 커다란 소리를 내는 철문을 양손으로 조심스레 미는데 그 사이로 반짝이는 빛의 무리가 보였다. 걸음을 옮겨 다가갈수록 첨벙거리는 물소리는 점점 커져 왔다. 마치 누군가 물 안에 있기라도 하듯 비규칙적으로 튀는 물소리가 그의 귓가를 자극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중혁아.
수분을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건조 하다 못해 갈라지는 사막 위 한쪽에 떠 있는 그는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고 있었는데 그 모습과 말투가 마치 아침 산책이라도 나온 듯 가벼웠다. 하얗게 빛나는 몸에는 천사의 날개와 악마의 뿔을, 공존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였다. 그래서일까 유중혁은 그가 무언가 말을 하는데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 신명(命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어쩔 수 없다는 듯 물에서 나와 그의 피부와 닮은 하얀 코트를 터는데 옷은 물론이고 몸 하나 젖어있지 않았다. 그는 중혁의 눈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별로 변한 게 없네. 발전은 했지만, 예전 그대로야. 내가 왔다 전하라 했다고? 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야. 역시 그 아이답네. 예전부터 그러더니만. 음?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자신을 향한 눈동자가 불결한 것 따위 본 적 없다는 듯 투명해서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시 이 자는 태초의 인간이었을 적 자기가 보았던 신이 맞았다. 밝은 척 돌아다니면서 심오한 말을 던지곤 해 그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던 자.
"힘을 빌려줄 수 있나, 구원의 마왕."
힘이라. 김독자는 그저 웃었다. 이 세계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었고 멸망이라는 것을 막아야 하긴 했지만, 그는 적어도 이번 생에서의 인간들을 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2회차의 유중혁의 삶은 같은 인간으로 인해 사라져버렸다. 안 그래도 상처가 많은 나의 회귀자를 또다시 상처 주고 벼랑 끝으로 몰아버리다니. 심지어 마지막은 그에게 죽일 가치조차 없다며 자신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하물며 그는 지금조차도 같은 인간에게 죽음을 권유받고 있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김독자가 날개를 접어 내려온 것은 살아있는 유중혁을 보고 싶었고, 또다시 휘말려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굳건하고 센 사람이라더라도 한낱 인간일 뿐. 자신이 유중혁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내려온 이유는 순수하게 그것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저런 표정으로 저런 말을 해버리면 괜히 들어주고 싶단 말이지.‘
"그 별명은 싫은데. 김독자로 괜찮아."
"네가 옛 생에서 보았던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처럼 넌 나를 다음 생으로 보낼 건가."
그렇게 묻는 유중혁의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긴장되는 탓에 몸이 떨리고 자꾸만 손에서 땀이 났다. 저번 생에서와 같이 인간으로서의 유중혁으로 죽어버리면 끝날 간단한 일이다. 긴장할 일 따위 아무것도 없었다.
"회귀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부디 협조해주었으면 한다."
"회귀자로서의 책임? 언제, 누가, 그런 것을 원했지? 죽으면 죽고 살면 산다. 그런 게 인간 아니었나? 네가 그들의 생까지 책임져야 할 이유 따윈 없어.“
차가운 시선에 그가 입을 다물자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 그래. 단순히 그런 얘기 일뿐인데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었다. 이내 조금 풀린 표정으로 바뀐 그가 문을 가리켰다. 아직 멸망의 때가 안 되었으니 조금 걸어도 될 것 같은데, 어때? 그러지. 중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해가 지는 방향에서는 재앙이라 불리는 괴물들이 깊은 곳에서 태어나 사막의 모래 가루들을 뒤엎으며 일어서고 있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무미건조한 사막, 천사와 악마 또한 지금까지의 수와는 비교도 안 될 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죽음은 너무 일렀기에 어떠한 멸망을 맞이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첫 번째의 죽음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옆에 김독자가 있어서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한 그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중혁아, 내가 여기 온 건 다 너를 위해서야. 이번 생에서는 네가 살아서 꿈을 꾸었으면 해서."
"김독자.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넌 이 멸망이 끝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나의 회귀가 끝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할 수 있어. 고통스럽기야 하겠지. 그러나 네가 원한다면 나는 너를 인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어. 뜻이 변질된 회귀자 유중혁이 아닌 인간 유중혁으로 말이야."
평온하게 웃던 안 그래도 하얗던 그의 몸에서 성스러운 빛이 흘러나와 그를 감싸 안았다. 김독자가 무언가를 잡는 시늉을 하자 그의 손에서는 번쩍이는 것이 솟아올랐고 그것은 반쯤 부러진 검이었다. 수많은 적이 김독자를 향해 달려들었고 새하얗게 빛나는 검이 빠르게 다가오는 재앙을 막아 베었다. 자신의 것과는 달리 그의 검을 정통으로 맞은 재앙들은 피와 같은 무언가를 뱉어내지 않은 채 가루가 되어 사라져갔다. 가로막힘 없이 배지는 모양이 신기해서 그저 그 광경이 신기하면서도 기이해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는데 하늘이 찢기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우리를 방해하는가, 구원의 마왕!
-그대들 원하는 대로 내버려 뒀으니 이제는 내 차례인 것뿐.
-너는 무엇인가 구원의 마왕. 왜 이제 와서 우리를 배신하는가.
-무엇이라니. 그대들 알다시피 나는 9158번째 성좌. 단지 그뿐일 텐데.
내가 누구냐고? 씨익 웃는 화사한 얼굴이 그리도 사악해 보였다.
어째서인가. 그는 알 수 없었다. 이길영은 그에게 신이 왔다, 라 표현했지만, 신이 이 세계를 사랑해 머지않다면 그것은 온 것이 아니라, 내린 것일 것이다. 단지 유중혁을 위해서. 그는 진심으로 이 세계 따윈 아무래도 좋은 듯싶었다.
"수식언이라는 제약을 나 또한 받으려 했었어. 그런데 그 순간 울부짖는 네가 보였어. 비참하고 원통하고 억울해하는 네 얼굴이 너무나도 처연해서 내 눈길을 사로잡았지. 그래서 그 어둠을 찢고 이름을 지었지. 그리고 나의 제약을 걸고 너의 회귀를 막으려 하는 거고.“
김독자는 말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 세계 대신에 유중혁을 고른 것이라고. 또한 그것이 과거 자신의 슬픔이라는 단순한 이유였을 뿐이라 그리 얘기하고 있었다.
"정말 단순히 그뿐인가?"
"너를 살려버린 것 치고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서 실망스러워?“
아니. 유중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을 본 김독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그편이, 김독자답다. 푸하핫. 얼마나 명쾌한 대답인가. 너는 날 너무 잘 알아, 중혁아. 맞아, 세계를 구한다는 둥 그런 거창한 이유는 필요 없어. 네가 없는 세계는 죽은 세계와 마찬가지니까. 그때였다. 검을 휘두르느라 휘날린 날개를 정리해 곱게 모은 그가 유중혁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차가운 듯하면서도 따뜻한 것이 흐르는 비에도 젖지 않고 흘러내릴 오뚝한 코에 닿았다. 익숙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김독자는 몇 초간 그리 있더니 중혁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
"유중혁. 중혁아. 내가 널 대신해서 멸망을 막을 테니 나의 이기심을 위해서라도 살아서 이 세상에 멸망이 없어지는 것을 지켜봐 줘. "
"김독자, 어디로 사라질 셈이냐. 또 그렇게 나를 두고 떠나버리는 건가!"
"괜찮아. 잠깐 잠이 드는 것뿐이야. 멸망을 막으면 재앙의 힘은 옅어지기 마련이야. 옛적 기억을 다 찾은 너라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야. 중혁아 그 때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멸망을 막을 수 있다, 알지?"
"걱정하지 마라. 난 이제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대답과 동시에 김독자의 몸과 그가 들고 있는 검에서 미친듯한 빛의 무리가 쏟아져나왔다. 찬란히 뻗어져나가는 것들에 멸망의 증거들은 종족 구분 없이 굳은 채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너를 보는 것은 언제가 되는 거지? 마지막이 될 듯한 물음에 김독자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네가 회귀를 하지 않고 살아있다면 곧, 만날 수 있겠지. 사랑해, 유중혁. 하얀 빛이 폭발이라도 일으키듯 모든 것을 감싸안았고 동시에 유중혁과 김독자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잠잠해져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 유중혁은 슬쩍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자 김독자는 없었고 방금 전까지 달려들었던 재앙들은 가만히 정지한 채로 부서져가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무척이나 화창한 날씨. 그동안의 회귀에도 볼 수 없었던 생에 처음 보는 광경. 김독자가 멸망을 막고 재앙은 바스러지려는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려 노력 중인 듯했다. 나도 사랑한다, 김독자. 길고 날카롭게 뻗은 검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도 너는 어디에선가 나를 보고 있을까.
아아.
너의 말이 맞다, 김독자.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세계는,
신이 내린 세상이다.
애처로운 유중혁에게 반한 김독자, 그를 구하기 위해 마음먹음. 다음 회차로 그를 보내버림.
간직하고 싶고 소중하게 여김. 그러나 때를 노리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함부로 건드리지않음.
상대를 좋아하나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있음. 이제는 의미가 변질되어버린 회귀자로서의 유중혁의 삶을 마치고 인간 유중혁으로 제대로 살아갔으면 하지만 행여라도 그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어 자신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회귀자로서의 길을 계속 걸을까하는 마음.
코 키스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