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라세라
해피 엔딩
어느 날의 밤하늘에서도 더 이상 별은 울지 않게 되었다. 오래 산 여러 스타 스트림에서조차 드문 기적적인 쾌거다. 신이 신화로 남게 된 이 세계에서 인간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 잔혹한 전쟁과 또는 피치 못할 재난으로 인하여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법을 알았기에 이번에도 과거가 보이지 않게끔 희망을 두텁게 덧칠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어제보단 불행하지 않다는 현실이 거의 광기에 가깝게 오늘과 내일을 직시하도록 하였다. 어서 서두르지 않으면 발목이 붙잡힐 듯 사람들은 급히 또 바삐 움직였다. 지켜보는 별과 상관없이 이어져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제 손으로 이룰 미래라는 것이었다. 이대로 잃었다 여긴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복구되며 평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거기에 있으리라고. 생환은 나락 아래를 차오르는 일련의 동작이다.
다른 맥락으로는 사라지는 것이다. 당연히 누렸던 것들에 값이 책정되고 약육강식이란 존립을 위한 것들은 뒤안길로 나간다. 죽어간 이들의 멸망한 세계이자 살아남은 이들이 지탱하였을 멸망하는 세계란, 환상극의 무대이고 잔인한 유희로 점철돼 최종장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로서 디뎌야 했는가. 이윽고, 고작 최선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거듭되는 자책과 좌절에 침식했던 이야기는 사라진다. 소설과 겹친 세상은 호우에 쓸려 내리고 동틀 무렵 바싹 말라 구슬픈 바람으로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사람들 대개가 체감하길 무뎠다. 애초에 없이 살 수 있었고, 없이 살았고, 없었던 것이기에 의의마저 없었다. 그래야 했다. 지금 여기에 이르고자 풀어낸 긴 이야기였으니까, 종막의 경계선상에서 중혁을 돌아본 김독자는 발돋움하는 수줍음처럼 희게 소리 냈다. 목소리는 기억에 새겨진 채다. 일찍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했던 그의 말이 옳다. 그렇기에 유중혁은 인정한다. 멸망에서 벗어난 세상의 재건되고 무던히 원래의 모습을 찾는다. 그가 모르는 세계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젠 더는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
뼈저리게 깨닫고 살이 에이도록 배웠을 터. 모든 것을 안다고 해서, 아는 만큼 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가져선 더더욱 아니되었다. 그걸 모를 리 없을 김독자는 노력을 다했다. 보잘것없는 허구에 숨을 불어넣고 영혼을 갈아 채우듯이, 제 가진 것을 포기하며 스스로 원하지 않은 바를 감내했다. 어떤 수식언도 그의 이름에 앞서 위대할 수 없을 만치 노력했다. 어쩌면 유중혁이 치를 말로보다 더. 그래서 옳은 말을 하면서 마음이 좋지 않다. 초조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찰나의 간격으로 좀먹어갔다.
"나도 알아."
이는 사라지는 것들의 사연이다. 처음은, 모르는 사람들에 관한 소문이었다. 아마 중혁이 수천 차례 회귀를 했더라면 만났을 수도 있었을 그들이 시나브로 잠들었다. 저 먼 나라에서 살던 사람과 방금 지나쳤던 사람이었다. 시대는 대단히 복작스럽고 다난했기에 눈치챈 이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중혁은 잠자코 그것들을 깨달았다. 의사와는 분간 없이 들려오는 소식들에 수시로 이설화와 유미아의 것이 스며들었다. 숨구멍으로 물이 차듯 무력하게 버텨내야 할 이야기들이 그에겐 형태가 없는데 뚜렷하게 구전되었다. 그중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건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 부정할 여지도 없다는 것. 확신할 수 있었다. 유중혁이 이들이 모두 스친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었다. 그의 곁엔 김독자가 있었으므로.
잠시간 침묵이다. 비밀도 거짓말도 아니다. 이토록 가감 없어 진부하고 마땅한 서사를 처음 인식한 건 중혁을 포함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바뀐 무대와 새로운 챕터에 민감했다. 필요없는 시나리오는 방치되고 그걸 진행할 장치는 망가지기 마련이다. 이들은 쓸모를 다 했다는 것이고, 이 세계를 위해 제 한 몸 다 바쳤다 한들, 그만 페이지로 넘어갈 것을 의미했다. 깜빡 잊었을 뿐 피치 못할 운명이자 그렇게 정해진 운명이란 걸 곧 깨달았다. 귀환은 오직 생존자들의 몫이었다. 또한, 회귀와 환생은 없을 시간을 살아가기엔 짊어진 개연성이 무거웠고 점차 이들의 숨을 짓눌렀다. 이야기 사이에 압화되어 간다는 것은 잠이 드는 것과 비슷했다. 연이은 침묵은 끝 모르게 길었다.
"그렇지만 중혁아. 이건 뭔가 잘못되었어."
흐릿한 얼굴. 절제된 감정. 마모된 진심은 무척 작다. 다양할 수 없이 일편만을 품을 속 좁은 그것은 그러나 단호했다. 답지 않게 김독자가 동의를 독촉하는 것은 그래서겠지.
이번엔 좀 더 가까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따금 안부를 물을 만치 가까웠던 두 사람이 마지막을 직감하였는지 결혼식을 감행한 날이었다. 신유승은 올 수 없는 자리였던 것을 길영이 옆의 빈 의자로 못 본 척하며 연인이 버진 로드를 걸었다. 주례나 정해진 형식 없이 순식간에 진행된 결혼식에서 던져진 부케를 수영이 받았고 컷팅한 웨딩 케이크를 상아가 나르며 입에 맞는 식사로 모두가 즐거울 모든 순간은 장면마다 아름다웠다. 축제와 같을 피로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저녁이 되어 김독자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이 중혁이 살갗에 와닿는 기별을 접했다. 그들이 영원히 함께하듯 잠들었다. 해피엔딩이다. 중혁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독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가 읽는 이야기의 사람들이었으니 말하지 않아도 알았을 것이다. 혹은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직시한 순간이겠다. 고작 소설 따위에, 거기다 행복하기까지 한 결말에 김독자는 절망스러운 얼굴이었다. 우리의 모든 이야기가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액정에 비치고 있을 터였다.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중혁아, 유중혁. 김독자가 부르는 그가 바로 유중혁이다. 삼십 대 초반에 어린 여동생이 있으며 입맛이 까다로워선지 요리를 잘했고 미의 기준이 될 외모이나 모난 성격과 외곬의 사고로 주변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 일쑤였달지, 전직 프로게이머이자 세상이 멸망한 후엔 회귀라는 무적의 특성으로 하여 잘 만들어진 주인공. 멸망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이란 소설에 쓰인 그가 바로 유중혁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났다.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생존했으며, 지구는 내리 행복할 것이다. 유중혁은 그 업적을 달성한 영웅이다. 비록 이 모든 게 공상의 끝, 허무였다 한들.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렇게 말하게 될 줄 몰랐다. 하고 싶지 않았다. 무력함은 독자의 역린이었다. 구원으로 건져 올려진 세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저 평범한 현대인의 일원이 되었다. 그렇지만 기뻐하지 않았는가. 서울의 작은 자취방을 빌려 살면서 가사능력은 쥐뿔 없고 사회생활은 잘하는가 걱정될 만치 자유로운 시간을 빼곡히 유중혁으로 채워 살면서, 우리가 구한 세상이라 기뻐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죽음을 무릅쓰고 희생을 감수하여 끝내 이룩해낸 것, 세상을 구한 걸 독자가 가장 만끽해야 할 지금에서 후회한단 사실에 중혁은 입안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한편으론 그런 마음이다. 그래서, 다시 세상을 멸망시키기라도 할 건가. 그딴 허무맹랑한 망상을 소중히 하겠다는 바람이란 이다지 한심한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구했는데. 어찌 그걸 이렇게 쉽게 져버리는가. 아무리 김독자라도 그래선 안 되었다. 말해봐.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나. 허튼수작 말고 똑바로. 그 잘난 세 치 혀로 다시 지껄여 봐라. 또 한 번 나를 기만하고 위선을 떨며 무시해봐. 그렇게 간절하다면, 나를 다시 그 소설 속에, 오로지 너만이 이해한다는 그 오만에 가둬 보라고.
"김독자."
주워담을 수 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초조함은 이윽고 짜증을 불렀다. 왜 모르는 걸까, 혹은 모르는 척하는 걸까. 틈새 없을 절박함이 나지막하게 부름으로 쏟아진다. 이 마지막을 그따위로 소모할 시간이 없었다.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싸웠고 경쟁했기에 승패를 가르는 건 우스운 일이 되었다. 이건 몹시 소모적인 대립임을 안다. 그런데 왜 이래야 하나. 중혁은 설득에 자신 없고 혀의 안쪽으로 차오르는 단어와 문장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걸 그러모아 완곡히 부탁하려 애썼다. 다급했다. 그는 이 시점과 김독자와 마주한 이 상황이 시시각각 아까웠다. 또 다른 한편은 이런 마음이라서다. 뭐라도 해야지, 어떻게든 해야지, 뭐든지 해야지. 네가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는데, 내가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는데.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는 손아귀에 있는 건 부질없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게 당연한 건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감정이 하나하나 말이 되지 못했고 그래서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전할 수가 없다. 그게 당연한 건데 속수무책으로 진창에 빠져간다.
"이제 내 모든 것이 너의 기억이다."
만약 이게 시나리오의 일부였다면 달랐다. 중혁은 이렇게 쉽게 납득하지 않았다. 세계를 구하는 그런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수백 번, 수천 개의 회차로 나뉘어 진행된 이야기가 결말로 당도하는 건 포기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야기가 끝을 맺었으나 기어이 잠이 들고 사라지는 건 독자의 성원에 보답할 속편이었을 뿐이다. 전심전력으로 순수하게 세상을 구하는 데 몰두하였던 그가 있어 주었으니, 등장인물들이 종국에 잠드는 것, 사라지는 것까지 슬프지 않을 수 있었다.
"나만 보지 못하는 세계에서도, 너만이 볼 수 있는 세계에서도 네가 기억하는 내가 전부다."
나만이 너의 세상을 구할 수 있다. 너만이 나의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김독자, 우리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나?
소설 <멸망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의 주인공에겐 끊임없는 죽음과 반복되는 시간, 불행으로 점철된 운명에 잠식당하며 상처 입고, 입히고, 소중한 것을 잃고, 빼앗고, 배신에 비난받으며 책임에 짓눌리는 세상에 다시 오롯이 혼자다. 그래도 좋다. 그런 것보다 유중혁은 김독자가, 그를 기억하는 그의 세상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필연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니까. 문장으로 실제한 일체라서 다 넘겨진 책장에 켜켜이 쌓여 덮이고 소리가 없는 그곳에서 눈으로만 좇던 이상향은 엔딩으로 인사하며 막을 내린 게 다일 리 없다. 다들 다르게 생각할 이야기의 폐막사는 제각기 다른 완결이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그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축복처럼 은혜처럼 저주처럼 몇천 가지의 방백에 영영 함께한 그대가 있어서라고. 이젠 너의 바람, 너의 상상, 평생에 걸쳐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시작한다. 신tls123이 백지에 그린 세계는 너의 것이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최초의 시나리오, 그전의 첫눈에 이미.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바친다."
이 헌사는 종막 후 독자가 이을 이야기에 보내는 주인공으로부터의 감사다. 이내 눈앞이 가장 여린 살 거피에 갇힌 본문 속 패왕은 한없이 무방비해진다. 그러나 칠흑이 덮여 보이지 않는 시야에도 숨을 부지한다면 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입맞춤과 같은 그런 것이다.
몹시 행복한 기억을 거쳐 일어난 그를 반기는 세계가 고독했다. 자연스레 눈을 감자 그를 보는 시선이 있었다. 멸망의 끝을 밟은 세계에 다시 그이다.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가 있어 영원불멸할 이곳에서 숨 쉬고 있음이다. 김독자. 선이 여린 얼굴, 사랑을 읊는 감정, 너의 진심이 내가 되었다. 유중혁이 눈을 뜬다. 그가 같은 세계에 살아 있었다.
눈 키스
'당신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