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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왕 김독자
‘또 왔네, 만두……’
*
김독자가 운영하는 식당은 입소문을 통해 꽤 알려진, 이른바 ‘숨겨진 맛집’이었다. TV 방송을 탔다면 더욱 유명해져 끊이지 않는 줄이 이어졌겠지만 이름대로 조용히 혼자 있는 걸 선호하는 김독자 탓에 방송 제의는 번번히 거절당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인들은 아쉬워했으나 곧 김독자가 어떤 성격인지 떠올리고는 수긍하곤 했다.
김독자의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무림 만두였다. 무림 만두를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냐며 그 맛을 극찬했다. 그럴 때마다 김독자는 운이 좋았다며 흐릿하게 웃곤 했다.
그렇지만, 실은……
‘꿈에서 본 소인들이 알려줬다고 어떻게 말하냐고……’
말해봤자 우스갯소리 취급 당할 게 뻔했다.
그렇지만, 김독자가 이 레시피를 꿈에서 배운 건 사실이었다. 너무 특이한 꿈이어서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28세가 되던 생일 밤, 김독자의 꿈에 피규어같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만약 인간이었다면 뛰어난 미남이었을지도 모르는 그들은, 작고 가분수였기 때문에 꽤 앙증맞아 귀여웠다. 김독자는 자신에게 이런 동심이 남아 있었던가, 의문을 가지며 이들을 귀여워해주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이 소인들을 만만히 본 것을 곧 후회했다. 김독자를 발견자 몰려오더니 그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요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꿈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김독자는 소심하게 반항해보았으나, 꿈에서 깨기는커녕 소인들의 분노를 사 이리저리 구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름 상냥했던 거였다는 것을 깨달은 김독자는 후회하며 혹독한 교육을 통해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결국, 오랜 시간과 수많은 노력 끝에 그들의 마음에 차는 완벽한 만두를 만들어 내고 나서야 꿈에서 깰 수 있었다.
꿈에서 깨자마자 김독자는 홀린 듯 장을 보고 와서는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만두를 처음 만들어보는 사람답지 않게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다 쪄낸 만두를 접시에 담아 한 입 물고 나서야 김독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이건 분명 꿈에서 만들었던 그 만두였다.
꿈에서 손이 닳도록 만두를 요리하는 바람에 익숙해졌던 걸까? 꿈에서 배운 지식이 어떻게 현실에서도 통하겠냐는 의문을 품기에는, 그의 눈 앞에 완벽한 결과물이 있었다.
*
과거를 잠깐 회상하던 김독자는 눈을 슬쩍 굴려 자신이 '만두'라고 칭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익숙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한 그 남자는 만두와 닮은 점이라고는 윤기가 흐르는 하얀 피부밖에 없었다.
남자는 그야 말로 신의 완벽한 피조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새까만 머리카락은 이마 위에 흐트러져있었고, 갸름한 뺨과 긴 눈썹, 짙은 색의 눈동자는 그를 우수에 차 보이게 했다. 여러 번 들어 익숙해진 목소리 또한 여심을 사로잡는 목소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했고, 입고 있는 옷이나 구두, 시계를 보면 재력 또한 충분해 보였다.
그런 잘난 남자를 김독자는 왜 만두라고 부르냐, 하면......
"일 인분 포장."
매일 아침, 문을 열자 마자 일 인분을 먹고는 일 인분을 더 포장해 간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물론 만두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다. 독자 또한 저가 만든 만두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과연 한 달 넘도록,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아침 출근하듯, 가게를 오픈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 와 2인분을 사먹는 사람을 평범하다고 불러도 되는 걸까?
김독자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28세에 가게를 열고 나서 31세가 될 때까지, 3년 간 그런 특이한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김독자 눈앞의 만두남,
"김독자."
"네?"
"여전히 생각은 없나?"
"뭐, 그렇죠......"
유중혁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
김독자가 그를 만두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칭한다는 것을 처음 안 사람이라면, 그가 그의 이름을 몰라서 특징으로 부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독자는 유중혁을 처음 본 날부터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명함을 내밀며,
"내 전속 요리사가 될 생각은 없나?"
라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유중혁은 가게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김독자의 시선을 끌었다. 조각처럼 잘생긴 손님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만두를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김독자는 이 손님의 뜬금없는 제안에 당황했다. 무림만두가 이 손님의 취향을 사로잡았구나 싶어져서 조금은 기쁘기는 했다. 그러나 김독자는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있었기에-그가 만든 음식은 무림만두를 제외하고 다른 요리는 평범했다- 농담으로 치부하며 거절했다. 대신 가게에 자주 오라는, 저답지 않게 사교성 넘치는 대답을 하며.
그러나 이 손님이 그로부터 매일 아침마다 출근 도장을 찍고, 일 인분을 해치우고, 일 인분을 싸 가고, 전속 요리사 자리를 내밀며 귀찮게 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런 대답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저 잘생긴 얼굴을 보면 알았어도 그런 대답을 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
유중혁은 말이 많지 않았다. 음식을 주문할 때, 그리고 자리를 뜰 때에만 말을 걸었다. 조용한 것을 선호하는 김독자로써는 그리 나쁜 상대가 아니었다.
유중혁도 김독자도 딱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서로에 대해 그리 많이 아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보고, 식사를 하며, 조용히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둘은 서로에게 천천히 녹아 들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이 직장에서 꽤 높은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 가게를 잘 운영하고 있는 사람한테 자기 전속 요리사가 되라고 당당하게 제안할 때부터 알았지만, 전화 내용이나 가끔 데려오는 비서 등의 사실이 김독자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유중혁 또한 김독자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한 것 같았다. 첫 인상은 분명 잘생겼지만 고압적인 사람이었는데, 놀랍게도 한 달 넘도록 한 시간 정도를 공유하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익숙했다.
물론 그 익숙함이 편안함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독자는 날이 지날 수록, 유중혁이 만두를 먹다 말고 자신을 빤히 쳐다볼 때마다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물론 그 잘생긴 얼굴이 자신을 주시한다면야 누구든 긴장하겠지만, 김독자가 느끼는 그 긴장은 종류가 좀 다른 것 같았다. 몰래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이를테면, 아주 잘 아는 사이인 사람들 간의, 묘한......
김독자는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어쩌면, 꿈 속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걸지도.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꿈이었어도, 내가 저런 외모를 본 적이 있다면 기억을 했겠지.
김독자는 턱을 괴고 만두를 하나 더 집어 드는 유중혁을 멍하니 바라보다 자신의 행동에 흠칫 놀라서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대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으므로-거의 유중혁뿐이었다- 이 시간대가 재료 손질을 미리 해두기에는 딱 이었다.
김독자는 기계적으로 손을 놀렸다. 너무 많이 해서 익숙한 작업이었기에 딴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착착 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세 달 전에 SNS에서 유명해지는 바람에 손님이 몰렸었지. 죽는 줄 알았어. 요즘은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만약 인기가 한 두 달만 늦게 올랐으면 그 손님들이 만두 얼굴 보고 시끄러운 소리를 냈겠지. 어쩌면 만두 얼굴을 보겠다고 더 올지도 몰라. 만두 얼굴은 봐 줄만 하니까. 아니, 봐줄만한 정도가 아니지. 저 놈 정도의 미모는 솔직히 TV에서도 보기 힘들잖아. 비율도 좋고, 얼굴도 아름답고. 불공평하다 불공평해...... 그래도 매일 와주니 눈요기는 돼서 좋네. 무표정일 때도 괜찮지만, 만두를 먹느라 상기된 뺨이랑 바쁘게 움직이는 입술은 좀 귀엽...... 악! 무슨 생각을 하는, --!'
"으악!"
김독자는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손을 붙잡았다. 마지막에 손이 삐끗한 바람에 식칼이 손바닥을 그어버렸던 것이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날을 자주 갈아뒀기에 그어진 손바닥 사이로 피가 송글송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도꼭지를 돌려 손바닥을 물에 씻어내며 어깨를 떨었다. 최근에 다친 적이 없어서인지, 물까지 들어가니 너무 아팠다.
거즈를 어디에다 뒀던 것으로 기억했지만,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약국에 좀 다녀와야겠는걸……’
김독자는 손이 다른 곳에 닿지 않게 치켜들고는 주방을 나섰다. 만두를 먹고 있었을 유중혁이 소리에 놀랐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다쳤나?"
"아, 별 것 아닌,"
김독자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성큼 다가온 유중혁이 김독자의 손을 잡았기 때문에. 그리고 어어, 하는 사이에 고개를 숙이고는, 그의 혀가,
"--!"
축축하고 물컹한 무언가가 그의 손바닥을 쓸어 올리는 감각에 김독자의 어깨가 움찔 튀어 올랐다. 곧이어 할짝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지금 유중혁이......
유중혁이 김독자의 손바닥을 핥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김독자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 순간적으로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곧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닿은 말캉한 입술, 간간히 느껴지는 숨, 질척이는 소리와 축축한 혓바닥의 감촉.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배 아래쪽도. 김독자는 다치지 않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유중혁은 속눈썹을 내리깔고 손바닥을 핥고 있었지만, 그가 언제든 눈동자를 굴려 저를 바라볼지도 몰랐다. 그저 상처를 치료하는 행위에도 달아오른 그를.
나, 변태였던 건가...... 김독자는 절망했다.
수 천 년 같았던 삼십 초가 지나고, 유중혁이 고개를 들어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마음 속으로 이마를 치며 자책 중이던 김독자는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표정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김독자는 알 수 있었다. 유중혁은 웃고 있었다.
유중혁은 보란 듯이 김독자를 바라보며 촉- 소리가 나게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내 것이 될 귀한 손이니 조심해라."
젠장. 김독자는 그제서야 알아챘다. 유중혁은 대놓고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대체 언제부터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봤던 건데?
그리고 왜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거지?
김독자는 예감했다.
자신이 유중혁의 것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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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정리해야지......
손바닥 키스
구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