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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

진심

 학생 김독자 x 피아노교사 유중혁

 역키잡 요소가 있습니다. 나이차가(10살 넘게) 있습니다.

 방치 등 아동학대의 암시가 존재합니다.

◇◇◇

 

가늘게 내리던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유중혁은 벽에 붙어 있던 담쟁이덩굴이 비를 맞고 있는 것을 바라보다 문을 닫았다. 간간이 듣고 있던 피아노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서 사라질 것 같았다. ‘조심해야겠군.’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살짝 오한이 들었던 탓일까. 몸이 살짝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중혁은 의자에 있는 담요를 슬쩍 들어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피아노 소리는 이제 멈춰 빗소리만 은은하게 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자신이 있던 원장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벌써 다 친 건가.”

 

방문을 열고 슬그머니 자신을 부른 것은 자신에게 피아노 레슨을 배우고 있는 김독자라는 어린아이였다. 김독자는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유중혁에게 다가와 피아노 책과 종이를 내밀었다. 포도송이가 그려진 종이에는 곡을 5번씩 칠 때마다 스티커를 붙일 수 있도록 했는데, 마침 스티커가 다 떨어진지라 색연필로 색칠하는 것으로 대신하게 했다. 조막만 한 손으로 삐뚤삐뚤 색칠을 해서 내민 종이를 본 유중혁은 이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그저 되물었을 뿐이다.

 

“벌써 다 친 거냐고 했다. 김독자.”

“네, 선생님. 다 쳤어요.”

 

김독자는 빤히 유중혁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거짓말이 능숙한지 김독자는 아무런 떨림도 없이 눈을 깜박거렸을 뿐이다. 그리고는 손이 아프다는 듯이 손을 내밀어 터는 시늉을 해 보이기 까지 했다. 유중혁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유중혁은 종이를 다시 훑어봤다. 아까 들린 곡을 생각해서는 역시 5번은 덜 쳤겠군. 그렇게 되면 마지막으로 동그라미 친 건 역시 무효였다. 한번은 봐주지. 비도 오는데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다른 아이들도 비를 핑계로 학원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오늘 학원에 나온 건 김독자 뿐이었다. 기특하기도 했고, 중혁은 김독자를 슬쩍 바라보고는 일어나 자석을 가져와서 게시판에 종이를 붙였다. 게시판은 이때까지 아이들이 피아노를 쳐서 완성한 포도송이를 나란히 진열하는 곳이었다. 이지혜, 신유승, 이현성…. 유중혁은 자신의 손을 거쳐 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속으로 중얼거렸다. 독자는 그런 중혁에게 다가와 자신이 완성한 포도송이가 신기한지 팔을 뻗었다. 손을 이리 뻗고 저리 뻗어도 키 때문에 닿지 않는지 애꿎은 발만 동동 굴렸다. 유중혁은 어쩔 수 없이 김독자를 들어 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가 앉혔다. 김독자는 말없이 자신이 완성한 칭찬포도송이 종이를 만져보다가 의자에서 내려와 유중혁의 담요 자락을 잡고 올려다봤다.

 

“…칭찬해주세요.”

 

그리고는 종이를 가르켰다. 포도송이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김독자를 칭찬합니다.’ 봐요, 이렇게 쓰여 있잖아요. 독자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중혁을 바라봤다. 칭찬이라, 하긴 종이가 그런 명목으로 만들어진 것이긴 했다. 고작 이런 거 때문에 김독자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완성하고 싶었던 건가. 유중혁은 김독자의 머리 위에 살포시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사이 넘실대는 아이의 머리카락이 보드라웠다.

 

“그래, 잘했다.”

 

김독자는 배시시 웃어 보이며 유중혁한테 안겼다. 보들보들한 체온이 닿았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열을 앗아버릴 것 같아 유중혁은 김독자를 하는 수 없이 밀어냈다. 독자는 한순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유중혁을 올려다보고 말을 꺼냈다.

 

“보상은요?”

“…?”

 

그래, 그랬었지. 유중혁은 김독자가 처음 이 학원에 왔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지금과는 다른 흐릿한 인상이라 얼마 안 두고 금방 그만둘 줄 알았다. 피아노에는 관심 없고 그저 무엇인가로 도망쳤다는 듯이, 책을 끌어안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있기만 했었다. 그런 자세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유중혁은 평소 다른 아이들에게 하던 대로 김독자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피아노 5곡을 칠 때마다 여기에 스티커를 붙이는 거다.”

“스티커를 다 채우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간식이나 보상을 받게 된다.”

“…정말이에요?”

“그래.”

김독자는 그 말을 듣고 뭐가 좋은지, 손을 뻗어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 갔다. 김독자. 그게 그 아이의 이름이었다. 그 아이가 점차 피아노를 좋아하게 되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유중혁에게도 뿌듯하고 좋은 일이었다.

 

“…그런 것도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런 것도 있었던 것도 같다가 아니라 있어요. 다른 애들에겐 사탕 쥐여주면서.”

“그렇군, 사탕이 먹고 싶은 건가?”

“아, 아니요!”

“그럼 뭐가 받고 싶은 거지.”

 

김독자는 드물게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고개를 슬쩍 돌려 시선을 피하다가 다시 맞췄다. 그러고는 부끄러운지 기어가는 개미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냥 선생님 뽀뽀를 받고 싶어서요. 작은 손으로 제 볼을 가르키곤 꾹 눌렀다.

 

“여기에요.”

 

뽀뽀라니? 유중혁이 당황스러워서 굳은 표정을 지었다. 간식보다 스킨십을 요구하는 어린아이라니, 이때까지 처음이었다. 김독자가 워낙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기는 했어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요구한 건 처음이었다. 이 기분은 뭘까. 마치 자신이 피아노를 처음 접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자기보다 3배정도 어린아이가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혁은 난감했다. 얼굴 때문에 피곤할 상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듣기는 했는데 이렇게… 아니다. 유중혁은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신이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거지. 어린아이가 이런 스킨십을 요구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말이야. 순수하기만 한 아이를 상대로 뭘 생각하는 거지?

 

번개가 쳤다. 유중혁이 김독자에게 홀린 듯 내뱉으려던 말은 천둥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온 세상이 밝아졌다가 다시 돌아갔다.

 

“응? 안 돼요?”

 

김독자는 부끄러운 것을 벌써 다 잊었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유중혁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유중혁은 입을 가리고 있었다. 밖에서 비를 맞고 있는 담쟁이덩굴 위의 달팽이가 되었으면 싶었다. 김독자는 그런 유중혁을 바라보고는 의자에 올라섰다. 유중혁의 얼굴에 닿을 듯 말 듯하게 손을 뻗었다.

 

“선생님.”

 

김독자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유중혁을 불렀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유중혁은 그런 김독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몸을 받치고자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김독자는 그런 중혁을 보며 미소지었다가 뒤꿈치를 들었다.

 

“그럼 제가 할래요.”

 

유중혁의 볼에 조심스럽게 닿는 그 촉감이 너무나도 금방 맺혀 사라지는 이슬 같아서, 유중혁은 한참 동안 머물렀다 간 자국을 느끼고자 만져봐야 했다. 이제야 칭찬을 받았네요. 김독자는 웃었다. 아까 볼에 닿는 감각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이, 투명하게 웃었다. 비는 계속 주룩주룩 내렸다. 유중혁의 마음과 함께.

 

그리고 다음 날 김독자는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

 

장마인 것 같았다. 뉴스 속보에서는 비모양의 구름이 둥둥 화면에 떠다녔다. 유중혁은 그걸 눈으로 좇으며 태양을 찾았다. 일주일간은 햇빛을 볼 수 없겠지. 김독자는 오늘도 학원에 나오지 못한다. 혹시 몰라 몇 번을 전화해 봤었다. 어젯밤 뒤늦게서야 연락이 왔었다. 감기라고 했다. 감기라니, 그 상태로 끝내버렸던 상황에서 김독자에게는 물론이고 유중혁에게도 지독한 감기로 다가왔다. 유중혁은 그날의 쌉쌀함과 자신의 감기가 독자에게 옮겨간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쓰였다. 오늘도 학원은 조용했다. 괜스레 피아노 건반을 쓸고는 눌렀다. 띵. 하는 건반 음이 그저 방안을 메웠다.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군. 유중혁은 일어나 차마 마르지 못하는 옷가지들을 챙기고 그나마 나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김독자의 집과는 거리가 꽤 있었다. 김독자는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자신의 학원에 찾아왔던 것이다. 유중혁은 자신의 어깨 자락이 젖는 것도 모른 채 그저 빨리 걸었다. 현관문에 도착했더니, 빈 개집과 밥그릇이 비를 나란히 맞고 있었다. 유중혁은 조심스레 우산을 접어 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삭막하군. 초인종을 누른지 한참이 지났다. 아무도 없는 건가?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눌렀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렸다. 겨우 기어 나왔는지 발갛게 상기된 볼과 흐릿한 눈이 끔벅, 하고 느리게 인사했다.

 

“선…생님?”

“실례하도록 하지.”

 

김독자가 갈라진 목소리로 유중혁을 불러 세웠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기에 유중혁은 집안에 바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집안을 둘러보자 적막한 공기만 맴돌았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혼자였던 건가. 김독자는 흐린 눈으로 계속 유중혁을 바라보다가 눈을 살포시 감았다. 유중혁은 그런 김독자를 안아들어 방을 찾아 침대에 눕혔다. 김독자가 뭐라고 웅얼거렸지만, 유중혁은 이불까지 덮어주면서 누워있으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나왔다.

 

유중혁은 어른의 흔적이 거의 없는 방을 반쯤 둘러보다 수건을 찬물에 적셔 김독자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는 부엌으로 왔다. 인스턴트 종류의 식품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건 있군. 유중혁은 처음 와본 집인데도 불구하고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챙겨 꺼냈다. 먼저 쌀을 불리고 그다음은…

 

*

 

따뜻한 느낌, 김독자가 눈을 다시 뜰 수 있게 된 건 몇시간이 채 안 돼서였다. 눈을 몇 번 깜박하면 익숙한 천장이었는데,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감싸주는 따뜻한 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시선이 향한 끝엔 유중혁이 서있었다. 김독자는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이불을 끌어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허튼 짓 하지 말고, 죽이나 먹어라.”

 

유중혁은 김독자의 이불을 홱 하고 벗겨내고는 김독자를 일으켜 세웠다. 으으, 김독자는 앓는 소리를 내며 얌전히 일어났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몇 번이나 뚫어지게 보더니 꿈인가 싶어 애꿎은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유중혁은 수저로 휙휙 죽을 떠서 살살 불어 준 다음 김독자의 입에 갖다주었다. 아기 새 같군. 얌전히 받아먹는 김독자를 보자니 자신의 여동생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만 말이야. 유중혁은 찝찝한 마음을 일단 속으로 밀어 넣고 김독자에게 죽을 떠먹였다. 죽을 싹싹 긁어 먹고 나서야 유중혁은 마음이 놓여 김독자의 입가에 묻은 걸 닦아내 주고 쓰다듬었다.

 

“잘했다.”

 

칭찬받았네요. 김독자는 실실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유중혁이 갑자기 온 것도 묻지도 않고 유중혁의 손을 잡아 웃었다. 물론 유중혁도 김독자에게 별말은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자주 와야겠군. 시답지 않은 생각만 몰래 해버리고 말이야. 앞으로도? 유중혁은 제가 김독자에게 내리는 감정의 정의를 다시 끄집어내야만 했다. 이건 어떤 감정일까. 번개가 내리쳤을 때 자각한 감정은 순수하고도 투명해 간질간질한 감정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아이는 유중혁의 손을 놓지 않은 것 같았다. 입에서 나오지 않는 말만 머물고 있는 채로 서로의 눈빛이 서로에게 닿았다.

 

“괜찮은 건가.”

 

유중혁은 김독자의 손을 꼭 잡았다. 김독자는 그저 이렇게 대답했다.

 

“네, 유중혁 선생님이 좋아서요.”

“…무슨.”

 

감기걱정을 핑계로 나오지 못했던 말을, 김독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버렸다.

 

“아니, 사랑해서요.”

 

몇 번이고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애정 같은걸 말하고는 했었다. 선생님의 피아노 소리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렇게 흘러가는 얘기인 줄만 알았다. 다 알고 있었군. 유중혁은 조용히 김독자를 바라봤다. 시간은 매우 느리게. 심장은 매우 빠르게. 서로에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 결국에 유중혁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군, 이제 감기는 내가 가져가도록 하지.”

 

유중혁은 살포시 김독자의 볼에 입을 맞췄다. 김독자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옮겨가기를 빌면서.

 

*

 

햇빛이 커튼사이로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김독자는 계속 피아노를 치고 있다. 아직도 유중혁보다는 작지만 상대적으로 훌쩍커버린 키가 세월을 실감케 했다. 피아노곡을 하나 끝낸 김독자는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칭찬해주실 거죠? 응? 눈을 접어 웃으면서 유중혁을 바라봤다. 연인이 된 지금도, 중혁은 그에게 살살 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유중혁을 한숨을 쉬곤 그의 볼에 쪽, 소리 나게 키스했다. 김독자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실실 웃었다.

 

‘친애하는 나의 제자에게. 내 진심을 다 바쳐서.’

볼 키스
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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